2014년 6월 30일, 서드 스테이지의 전신 '에이드 3D프린팅 스토어'를 만들고 지금까지
힘써오고 있는 와중에, 전공이었던 게임 일러스트레이션은 어느덧 내 거리에서 아득히 멀어졌고,
그 시간들을 양분 삼아 서드 스테이지는 키덜트 시장의 이단아 '개새 시리즈'를
주력으로 지난 해 거대한 재정적 마이너스 성장을 이뤄낸 신개념 IP 기획사가 되었다.
개새 피규어 시리즈를 처음 기획하고 밀어붙였을 때, 천신만고 끝에 텀블벅용 시즌1의 첫 번째 물량을 만들고 키덜트페어 메인부스에 출전했을 때, 다음에는 '이만한 고난까지는 없겠지'라고 생각했었다.
피규어 하겠다고 설쳤을 때 팀 내에서는 '뭐하러 그 고생을 하냐'는 볼멘소리가 줄을 이었고, 그럼에도
새파란 업계 초심자가 그걸 이겨내면서 완성된 시리즈를 만들었으니 시즌2는 조금은 쉬울 줄 알았지.
하지만 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장벽들이 나타났고, 이번에는 장애물을 무리하게 몇 개
넘으려다가 정말 다리가 부러져버렸다. 그리고 정말 자신과 회사의 숨이 같이 넘어갈 뻔 했다.
1년 하고 2 개월.
개발인력 3인 이하의 신생 IP기획 및 제조사가 6종의 오리지널 동물 피규어 4000개를 기획하고, 펀딩받고, 제조하고, 납품까지 하는데 걸린 시간이다. 처음 만들었던 개새는 다 같이 재미있자고 만들었던 소소한 스탠딩 코미디였지만, 이제 내게 있어서만큼은 고루한 다큐물이 되어버린 것처럼 느낀다.
앞으로 평가될 사업적 성과여부를 떠나,
개새의 시즌2는 평생 잊지 못할 프로젝트가 됐다.
기획과 디자인이 이미 1년 전에 완료된 상태였던 개새 피규어 시즌2는 이후 총 4개 회사의 샘플링,
2개 공장의 실제 제조, 1번의 소송, 2번의 펀딩과 홍보를 거쳐 완성되었다. 이미 만들어놓은 개새 시즌1의 여러 면이 사랑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에 기반한 캐릭터 기획과 디자인을 끌어내는 것이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시바새, 쉽새, 비죤, 닥치 등 시즌1에 비해 더 동글동글하고 보다 양산에 적합하도록 팬시 감성을
갖춘 기획안들을 추가시켰으며, 캐릭터 면에서 시즌1보다 앞선 디자인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새 시즌2는 여유있게 60000개의 물량을 투입해
2017년 9월 출시를 목표로 작년 4월에 돌입했던 생산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실제 납품은 전체의 8%만이 2018년 2월 8일에 이루어졌으니, 반 년 이상 딜레이가 됐다.
초기 공장 선정부터가 큰 문제가 있었고, 여기에는 내 뜻이 아닌 어른들의 사정이 개입됐다.
결국 소송으로까지 번지게 된 첫 번째 공장에서는 양산, 그 6개월은 정말 끔찍했던 시간이었다.
허공에 날린 비행기 표는 몇 장이며, 동관 길바닥에, 호텔 하수구에 버려진 시간들은 몇십 일이던가.
중국인의 부정적인 면을 잔뜩 경험할 수 있었던 최고의 사례- 개새 시즌2에게는 최악의 시간이 되었다.
결국 금형, 사출물, 조색된 물감, 미조립된 도색품들. 1년을 작업했건만
첫 번째 공장의 60000마리 중 어느 것 하나도 건질 수 있는게 없었다.
밤을 새가며 살려보려 애썼지만, 어느 것 하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국 2017년 12월말, 새로운 공장에서 새 디렉션으로 처음부터 다시 작업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그 때는 출고 일 주일 전이었다. 물론 공장과 중개업자들은 뒤집어졌고, 회사 내부에서도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은 있었다. 최종 출장으로 여겨졌던 중국행으로부터 단 4일 뒤였지만,
이런 제품은 낼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마음으로는 어렵지는 않았다.
물론 머리는 터져나갈 지경이었다.
기입금된 계약금은 하늘나라로 보내던 소송을 하던, 기존에 만든 것은 모두 파기하고,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공정을 실현하기 위해 새 공장으로 간다.
이미 딜레이된 텀블벅 고객분들께 설 전에 보내는 일정은
금형제작 20일, 사출 포함 양산 기간은 단 1주일-
한국으로 출고-통관 포함 최대 2주였다.
춘절이 가까워 오고 있던터라 새 공장에 주어진 인력은 절반도 되지 않았고,
바로 전 공장과의 소송 상태로 몰린 프로젝트로서는 새로운 질감과 조형이
적용된 모델을, 금형조차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이미 출고 지연으로 인해 텀블벅 환불은 시작되었다.
그래도 이건 끝까지 내 잘못이니까, 어디 숨을 데가 없었다.
그래도 해야하는 일이었다.
그런 일은 있었다.
변호사에게 전달할 증빙자료를 정리하며, 새로운 금형과 공정,
그리고 실현할 플랜을 가지고 다시 중국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