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 답사기] 막걸리 한병에 110만원…프리미엄 전략에 도전하다
입력 : 2023-01-09 18:57
수정 : 2023-01-11 05:01
[우리 술 답사기] (49) 전남 해남 ‘해창주조장’
유기농찹쌀 함량 높은 삼양주
감미료 없이 쌀로만 단맛 ‘승부’
‘해창막걸리 아폴로’ 고가 논란
출시 초 우려와 달리 완판행진
“전통주는 값 비싸면 안된다?
편견 깨는 상품 계속 선보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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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전남 해남 해창주조장의 ‘해창막걸리’ 아폴로·9도·12도·6도. 출고가가 110만원인 ‘해창막걸리 아폴로’는 병이 도자기와 순금 한돈으로 만들어졌다. 해남=현진 기자

노이즈 마케팅은 ‘막걸리업계’에도 있다. 술을 잘 모르는 사람도 해창주조장(대표 오병인) 이름은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무려 출고가가 110만원인 <해창막걸리 아폴로(18도)>를 내놓은 배짱 좋은 양조장이다. 논란도 논란이지만 해창주조장 술은 연예계, 정·재계를 막론하고 마니아층이 탄탄하다. ‘땅끝마을’이 있는 전남 해남이라도 이쯤 되면 안 가볼 수 없다.

“원래는 서울 토박이예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닐 때 종종 <해창막걸리>를 택배로 주문해 마셨죠. 그때 연이 닿은 양조장 대표가 고령으로 양조장 운영을 어려워했어요. 덜컥 인수해 술을 빚기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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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인 해창주조장 대표가 ‘해창막걸리 18도’를 보여주며 환하게 웃고 있다. 해창주조장 건물은 일제강점기 당시 쌀창고로 지어진 곳으로 100년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오병인 대표(58)가 해창주조장을 인수한 건 2008년이지만 양조장 역사는 1920년대부터 시작한다. 화산면 해창리에 쌀창고를 지어두고 미곡상을 하던 일본인이 해창주조장 자리에서 청주를 빚었고, 해방 이후 2대와 3대를 거쳐 4대인 오 대표까지 왔다. 그는 작은 지역 양조장이었던 해창주조장을 한해 방문객 5만명이 찾는 지역 명소로 만들었다.

<해창막걸리>는 기본적으로 세번 빚는 삼양주다. 유기농 찹쌀과 멥쌀 비율을 8대 2로 술을 담그며 고두밥을 쪄서 만든다. 기본적으로 6도·9도·12도 막걸리가 있으며 주력 제품은 12도다. 명절과 연말같이 특별한 날엔 15도와 18도 막걸리를 내놓는다. <해창막걸리 18도>만 한번 밑술, 세번 덧술한 사양주다. 발효와 숙성엔 꼬박 두달이 걸린다. <해창막걸리 아폴로>는 내용물은 같지만 병을 도자기와 금 한돈으로 만들었다. 나머지 술은 20일 정도면 완성된다. 발효제로는 우리밀로 만든 누룩과 입국(일본식 누룩)을 함께 쓴다.

술맛은 어떨까. <해창막걸리>는 기본적으로 달고 되직하다. 찹쌀 비율이 높고 술에 들어가는 쌀이 많아서다. 무감미료로 오직 쌀맛으로만 단맛을 냈다는 게 오 대표의 자부심이다. 도수가 올라갈수록 이게 막걸리인지 요구르트인지 모를 뻑뻑한 질감이 느껴진다. 몇모금 마시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해창막걸리>만의 특별한 맛을 사랑하는 유명인이 많아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배우 조인성, 개그맨 정준하, 허영만 화백 등이 우리 막걸리의 매력에 빠졌죠.”

여전히 <해창막걸리> 가격에 대한 논란은 진행 중이다. 오 대표는 이에 주춤하지 않고 한술 더 떠 올해 3000만원 상당의 증류주를 출시한다. 이는 <해창막걸리>의 맑은 부분을 증류한 술로 60도·45도·35도·25도 4종으로 출시된다. 이중 60도 증류주와 금 50돈으로 만든 금잔이 세트로 구성된 제품은 3000만원에 이른다. 과연 팔릴까. 오 대표의 대답은 명쾌하다.

“전통주가 반드시 저렴해야 한다는 편견은 버리세요. 100만원짜리 와인은 이야깃거리가 안되지만, 100만원짜리 전통주는 화제가 될 수 있죠. 출시했을 때 다들 절대 안 산다고 했던 <해창막걸리 아폴로>도 지금은 서울 영등포에 있는 백화점에서 100만원 후반 가격에 매주 1병씩 꼬박꼬박 판매되고 있어요. 지난해 만든 술도 완판됐죠. 술맛은 말할 것도 없고요. 해창주조장의 행보에 조만간 또 깜짝 놀랄 수도 있겠네요.”

<해창막걸리> 가격은 900㎖ 기준 6도 5000원, 9도 8000원, 12도 1만2000원, 15도 5만5000원, 18도 11만원이다.

한편, 해창주조장에서 술만큼 유명한 건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건물이다. 양조장 안에 1920년대 지어진 2층 높이의 목조 살림집이 있는데 내부만 개조했고 외형은 그대로다. 오 대표는 일본인 기술자 15명의 도움을 받아 올해 복원할 계획이다. 양조장 바로 맞은편엔 해남 곡식을 수탈할 때 사용한 쌀창고가 있다. 영욕의 세월에 철판 겉면은 검붉게 녹이 슬었지만 창고 안 서까래와 들보는 아직도 건재하다. 은목서·가시나무·영산홍·천리향·소나무 등 수백종의 수목이 빽빽하게 자란 정원 역시 소문난 볼거리다. 만약 양조장에 간다면 겨울보다 봄에 가는 게 더 좋다.

“봄이 오면 정원 한가운데서 술판을 벌이고 찾아오는 손님들과 담소를 나누기도 해요. 그윽한 꽃향기 속에서 <해창막걸리>를 마실 수 있죠. 해남에 여행하러 왔다 잠시 들른 가족 단위 손님들이 많고요.”

해남=박준하 기자(전통주 소믈리에), 사진=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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